차종례의 조각 – 꿈꾸는 사물, 꿈꾸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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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선택은 모든 사물을 미지의 것으로 여기고 숲속을 산책하거나, 풀밭 위에 누워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프랑시스 퐁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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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례의 조각은 모든 선입견이 지워져버린 영도의 지점에서, 의미가 발아되기 이전의 모태, 자궁, 씨앗, 알, 집에서 발가벗은 채로 발가벗은 사물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영도의 지점에서 사물과의 조우는 알려진 바가 없는 새경한, 낯설은, 가슴 설레이는 미답지에로의 모험이며 순결한 처녀지의 숲속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영도의 지점에서 사물은 이름이, 기능이, 의미가 없다. 대신 무수한 이름들이, 기능들이, 의미들이 있다. 그곳에서 사물의 존재 방식은 결정 이전의 가능태로 존재하며, 특정의 이름 혹은 기능 혹은 의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한 실제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구근류 식물의 뿌리를 상기시키는 거대한 씨앗으로부터 돋아난 떡잎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품에서 씨앗은 모든 상상력이 발아되는 최초의 지점이며 그 기원이 되고 있다. 떡잎는 상상력이 낳을수 있는 산물을 말하며, 상상력의 성분 여하에 따라서 떡잎이 아닌 다른 것이어도 무방하다. 이는 상상력이 어떤 결정적인 것보다는 가는한 것 혹은 잠재된 것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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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거자 특정의 이름으로 그것을 명명하는 일은 곧 사물을 주관화하는, 종속화하는 것으로써 사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주체의 권력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주체의 권력에 일체의 결정화된 의미를 거부하는 사물의 고집이 대립한다. 사물의 고집이란 뿌리뽑힌, 부유하느, 곧 사물의 자유로운 존재를 말하며, 인간의 육체 중 그것에 가장 근사한 장소가 다름아닌 상상력이다. 사물은 육체를 이루는 여섯가지 기관, 즉 오감 중 특히 촉각은 사물이 존재하는 지층 중 질감, 애무, 스킨쉽과 관련되며, 여타의 기관들이 사물을 대면한 주체와의 일정한 거리를 전제하는 것과는 달리 일체의 틈새와 거리가 소거된 사물과의 직접적인 만남인 것이며, 따라서 가장 조각적인 원소이기도 하다.
사물의 비결정성은 알려진 의미 밖으로 사물을 풀어주는 일이며, 이러한 사실은 화병들을 형상화한 작업에서 그 예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작품에서 화병들은 예컨대 꽃을 담는 용기라는 일상의 기능적 의미 대신 어떤 유기체적잉 형상으로, 심미적이 대상으로 전이되고 있다. 각각의 화병들은 머리에 눈과 입술과 귀를 이고 있다. 그 형상은 실제 화병의 주둥이가 상기시키는 어떤 변용 가능성으로부터 멀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부터 지나치게 먼 변용은 공상이 될 것이다. 공상은 어떤 가능성을 향해 밀어 붙여진 압축된 강도와 밀도가 일시에 기화하는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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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또 다른 한 사물인 작가의 육체에 대해 말을 걸어옴으로써 어떤 소통 혹은 교감을 꾀한다. 이때의 소통은 주체와 대상 혹은 시선과 응시라는 이분법적인 계급 구조에 근거를 둔 일방통행식의 방식이 아닌 두 주체 간의 교감을 전제로 하는 상방 통행식의, 흔히 물아일체의 경지를 취한다. 물아일체, 곧 두 주체가 무구분적으로 하나가 되는 육체의 장소가 상상력이다. 그곳에서 육체의 여섯 기관이 통어되는 방식이 공감각인 것이며, 공감각이 물화 혹은 외화한 것이 변태다. 변태는 물아일체의 서구적 번안이며, 사물 본래의 자유로운 존재인 동시에 사물을 인식하는 상상력의 구조이며, 일체의 추상적 표상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원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추상적 표상이 다름아닌 이질적인 둘 이상의 개체(개념이든 사물이든)를 관련짖는 능력 혹은 장치임을 상기한는 것으로 쉽사리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추상적 표상이란 실제하는 사물 자체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실제하는 사물의 존재방식에 간여함으로써 실제한 적이 없는 어떤 공간을, 틈을 세계에 대해 개시하는(열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이렇듯이 세계에 대해 사물이 개시되는 최초 지점 위에, 그것의 고정화에 작가의 시선이 머물고 있다. 동선을 용접하여 감아올린 거대한 항아리에 꽂혀있는 들꽃 다발에서 낱낱의 꽂들은 동시에 각양각색의 펼쳐진 손바닥으로의 한 변용 가능성을, 상상력 속에 잠재된 한 의미를 세계에 대해 열어보이고 있다. 미풍의 부드러운 촉감에 가벼운 몸을 맡겨 공간을 유영하는, 한때 자기의 일부였던 꽃씨들을 손짓으로 부르는 이름모를 꽃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손짓’은 ‘부르는 행위’와 동의어이며,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이름이 불려진 경험과 관련한 작가의 온갖 기억과 추억과 회한과 아쉬움이 작품에 어떤 시적인 아우라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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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업에서 사물의 변태와 그 변태의 다양한 지평을 포착하는 공감각적 접근은 단순한 오감의 교환을 넘어선다. 일태면 바이올린을 모티프로한 작품에서 보듯이 시지각적이고 형태적인, 청각적인, 유기체적인, 그리고 화학적인 변용이 겹쳐지는 식이다.형태 혹은 유기체적인 변용은 여체와 어떤 생명체를 상기시키는 섬세하고 유연한 굴곡을 가진 외관을 말하며, 청각적인 변용은 청각적인 이미지를 시지각적인 이미지로 번안하고 고졍화한 결과이다. 그리고 화학적인 변용은 특히 활에 반영된, 고체로부터 액체로의 변질을 상기 시키는 흘러 내리는 듯한 외관에 반영된다.
옷걸이의 꿈을, 몽상을 형상화 하고 있는 작품에서는 유기체적인 변용과 화학적인 변질과정이 접붙여져 있다. 완만한 지그재그 형의 곡선으로 고착화된 형상이 어떤 오수 혹은 나른함 혹은 휴식을 상기 시킨다. 보기에 따라서는 달팽이 처럼 느리게 미끄러지는, 굼뜬 시간의 추이를 형상화한 듯도 하다. 옷걸이와 마찬가지로 거는/걸려질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 넥타이에서는 그 끝자락이 장미형상으로 변용되고 있다. 장미 형상은 넥타이의 기하학적 형상이 갖는 변용 가능성으로부터 멀지 않다. 사물이 변태하는 한 지점을 포착하고 형상화하는 작가의 방법은 이런 식이다. 곧 변태의 상당 부분이 실제에 접붙여져 있다. 몽상이 호흡하는 사물의 부위가, 그 빈 공간이 바로 이 지점이며, 작가의 작업이 설득력을 갖는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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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사물은 흔히 어떤 이름 혹은 기능으로 닫혀져 있기 마련이다. 이렇듯이 세계를 향해 닫혀 진 문을 열어 사물이 자기의 존재를 개시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마치 물이 그런 것처럼 순차적이지도 않고 구분할 수도 없는 밤의 시간이다. 사실의 인식과 망각이 공존하는 무시간의 시간이며, 그 찰나적인 순간을 체득하는 상상력의 성질이 고독이다. 고독이란 곧 상상력의 진공 상태를, 충분히 열려져 있으면서 긴장의 입자들로 가득 채워진 상상력의 빈 공간을 말한다.
작가는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 혹은 커피포트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바라본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말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일상의 사간으로부터 비켜난, 이미지들의 세계인 고독의 영토에 들어섰음을 말한다. 주전자로부터 길게 늘여트려진 연기 끝자락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작은 연기 덩어리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발들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기화하는. 상승하는, 가벼운 연기의 화학적 이미지와 신체의 유기체적 이미지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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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례의 조각은 모든 의미가 지워진 영도의 지점에서, 미답지에서, 처녀지에서 사물과의 조우를, 곧 우연한 맞닥트림을 통해서 사물이 세계에 대해 자기를 열어 보이는 어떤 순간을, 찰라를 포착하고 형상화 한다. 그럼으로써 결정화가 아닌 가능태의, 단수가 아닌 복수의 본래 자리로 사물을 되돌려 놓는다. 혹은 사물 본래의 생명력을, 꿈을 회복시켜준다.
고충환
미술 평론가
-1999년 제1회 개인전 서문 중에서-